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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웨슬리의 집회현장에 나타난 영적인 현상들: 2 - 최승태박사

본문

9. 영적현상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

웨슬리는 영적현상을 이성적인 방식으로 재단하지 않았다. 그는 영적인 현상들을 철저히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베푸시는 은혜로 보았다.
그렇다고 웨슬리가 모든 영적현상들을 성령의 선물로만 본 것은 아니다. 웨슬리는 사탄도 얼마든지 성령의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영적현상이 성령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철저하게 분별해야할 것을 강조했다.
웨슬리는 또한 영적현상 없이도 하나님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를 경계했다. 그것은 영적현상을 부정하는 것과 영적현상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일기에서 이것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피가 부어지는 현상에 대해 [1742년 9월 6일(월)]
 
금요일 밤에 행한 나의 설교에서 찔림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특히 신앙으로 강하게 된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나는 그 문제를 철저하게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M.C., M.F., E.H.. 그리고 A.G.와 몇몇 다른 사람들이 사라 클레이블(Sarah Clavel), 제인 잭슨(Jane Jackson), 그리고 안 폐(Ann Pye)등에게 문제가 되는 질문을 했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나와 함께 만나기를 원했다. 그런데 나는 그들 각자가 그녀의 체험과 크게 연관이 있음을 들었다. 그 후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에 접해서 몇 번에 걸쳐 그들을 검토했다. 또한 그것에 대해 몇 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들의 체험, 즉 평화와 기쁨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의 활동에 대한 느낌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다(기록된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명은 그리스도의 피가 그들의 팔로 흐르거나, 목으로 내려오거나, 가슴 혹은 심장에 뜨거운 물처럼 퍼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나는 그들에게 말씀과 이성에 반하지 않는 최상의 범위에서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현상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라고(내가 그렇다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또한 이것은 칭의나 성화에 본질적은 것은 아니고, 상상력에 의한 단순하고 공허한 꿈들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2) 울부짖음에 대해

➊ 1742년 12월 30일(목)
나는 최근에 회중 가운데서 울부짖었던 사람들을 주의 깊게 검토해보았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은 그들이 어떻게 혹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된지도 모른 채 갑자기 쓰러졌고, 또한 그 후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했는지 알지 못했다.
또 다른 이들은 공포에 휩싸였다는 사실만을 단지 기억할 뿐, 어떤 공포 속에 있었는지 말하지 못했다. 몇 사람은 악마의 공포 속에 있었다고 말했고, 이것이 그들이
아는 전부였다. 하지만 몇 사람은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내적이고 외적인 죄에 대해 가졌던 날카로운 의식에 대해 보다 명료한 설명을 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자신들에게 마땅히 주어질 벌에 대해 공포를 가졌다.
그들은 곧 거기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
‘저는 마치 지금까지 본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악마가 저를 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저는 지옥의 불이 이미 저의 가슴에 붙었고, 온 몸은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 있는 듯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들을 나무라고, 또한
‘이들이 평화를 안도록’할 지혜는 무엇인가? 나사렛 예수께서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이들로 하여금 그분을 부르게 하라.     

➋ 1742년 12월 30일(목)
여관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영혼이 있는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나는 그의 저주스럽고 게으른 대화에 관해 몇 마디 말을 해 주었다. 그 남자는 정말로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보였다. 눈물이 그의 눈에 맺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았다(나에게 크게 고마워했다).     

➌ 1743년 3월 12일(토)
나는 두 번째 방문을 마무리했고, 거기에서 한 가지를 탐색했다: 지난 주 거의 매일 밤 설교 도중 부르짖었던 사람들의 진상.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발견했다.

① 그들 모두(내 생각에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는 그렇게 감동받을 때까지,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어떤 종류의 흥분상태도 아니었다.   
②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도중, 혹은 자기들이 들은 말씀을 생각하는 도중,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한 순간에 이런 현상이 그들 모두에게 나타났다. 
③ 그 순간에 그들은 쓰러졌고, 힘을 잃었으며, 격렬한 고통에 휩싸였다. 그들은 이것을 여러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어떤 이들은 검이 자신들을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은 매우 무거운 것이 자신들을 눌러서 마치 땅속으로 밀어 넣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목이 메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심장이 부풀어 올라 터질 지경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심장이, 어떤 이들은 그들의 내부가,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의 몸 전체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 증상들을 하나님의 성령이외에 어떤 다른 자연스러운 원인에 귀속시킬 수가 없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그들을 ‘찢는’것은 사탄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슬픔에 찬 부르짖음이 나온다. 이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만들고, 공포에 찬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어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해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④ 그들의 몸 뿐 아니라 마음도 다양하게 감동받았다. 이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하고 특별하게 설명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찔러서, 그들의 외적인 죄 뿐 아니라 내적인 죄에 대해서도 확신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 느꼈고,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여기에 고발자가 큰 힘으로 다가와서, 그들에게 희망이 없으며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몸의 고통이 순간적으로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그들은 큰 비탄의 부르짖음을 하게 된 것이다. 

3) 영적현상 전반에 대한 웨슬리의 견해

➊ 1759년 11월 25일 (주일)
오후에 위로를 주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있었다. 그런데 사역의 방식에서 전에 여기에서 일어난 것과는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지금은 황홀경에 든 사람이 없고, 부르짖는 사람도 없고, 쓰러지거나 진동하는 사람도 없다. 단지 몇 사람만이 극심하게 떨었고, 낮은 소리의 중얼거림만 들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평화’로 생기가 넘쳤다.
위험한 일은 부르짖음, 진동, 환상, 황홀경과 같은 특별한 사건들을 중요시 하여, 이것들이 내적인 사역에 본질적이고, 따라서 그것들 없이는 내적인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또 하나의 위험은 그런 특별한 사건들을 너무 하찮게 여겨서, 그것들 모두를 비난하고, 그것들 안에 하나님에 대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①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잃어버린 죄인이란 사실을 갑자기 그리고 강하게 확신시키셨고, 이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결과는 갑작스러운 외침과 강한 몸의 진동이었다.
② 믿는 자들을 격려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사역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꿈을 꾸게 하시거나 황홀경과 환상으로 인도하신다.
③ 이런 예들 가운데 몇은 자연과 은혜가 혼합되어 있다.
④ 사탄도 그 사역전체를 불신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흉내 낸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체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로서 왔다. 요즘에는 일부가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 사역이 얼마나 순수한지 또한 그것이 어느 지점에서 혼합되거나 변질되었는지를 알게 해 주실 것이다.     
몇 몇 경우에 위선이 혼합되어 있고, 몇 몇은 보거나 느끼지 못한 것을 보고 느낀 것처럼 가장하고, 또한 정말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진동이나 부르짖음을 흉내 낸다고 가정해보자. 이렇다 해도, 성령의 실제 사역이 부정되거나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림자가 실재를 불명예스럽게 하지 못하고, 모조품이 진짜 다이아몬드를 그렇게 하지 못한다.

➋ 같은 날 - 1759년 11월 25일 (주일)
사탄이 이 비전들을 가진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들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는 가? 그것은 하나님께는 겸손한 사랑이외에 어느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만을 경계해야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시각에서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부지런히 교훈하는 것뿐이란 사실이다. 비전들을 경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이성적이고 비기독교적이다. 



III. 나가는 말

지금까지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집회현장에서 나타난 영적 현상들을 살펴보았다. 그 현상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지식과 철학을 중시하던 웨슬리 당시의 영국 국교회나 가톨릭교회는 웨슬리의 집회를 인정할 수 없었다. 또한 예정설 같은 교리에만 집착했던 장로교회도 웨슬리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웨슬리는 교리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마음의 종교”를 강조했다. 신앙은 교리에 대한 이성적인 동의나 승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고 믿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것을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이라고 불렀다. 
웨슬리가 말하는 살아있는 신앙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신앙이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어 칭의를 얻고,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어 성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웨슬리는 바로 이것을 “복음”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복음이란 칭의를 거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화의 전 과정을 일컫는다.
또한 웨슬리는 이런 복음의 전 과정이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임을 역설했다. 철저히 성령께 의존하고, 성령께 순종할 때에만, 복음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웨슬리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것을 신앙의 본질로 이해했다.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다양한 영적인 현상들을 웨슬리가 중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교리를 이성적으로 승인한다 해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그것을 마음으로 믿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웨슬리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복음운동을 “성령론적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웨슬리의 성령론적 복음주의 운동은 조지 윗필드에게 전이되었고, 윗필드는 미국으로 건너가 조나단 에드워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에드워드에 의해 미국의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더욱이 웨슬리는 감리교회를 창시했을 뿐 아니라, 구세군, 성결교회, 오순절, 순복음,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카리스마 운동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성령론적 복음주의 운동은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고 계승할 뿐 아니라, 잘 다듬어서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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